2부 | 8강

제8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다

1. 새로운 여정의 시작: 하나님은 누구신가?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긴 여정을 거쳐 이제 절반쯤 왔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기독교가 왜 스스로를 ‘절대적 종교’라고 주장하는지를 살펴보았죠. 이제부터는 그 여정의 후반부, 즉 기독교가 말하는 개별적인 기본 진리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려온 그림의 윤곽 안에 색을 채워 넣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다루어야 할 첫 번째 진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하나님(God)’**입니다.

“신은 존재하는가?”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 이 믿음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증명은 오직 이미 믿고 있는 사람에게만 이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철학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논증을 제시했습니다.

  • “모든 사람이 신을 믿는다. 고로 신은 존재한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있죠.)
  • “세상에는 ‘제1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이 바로 신이다.” (하지만 왜 그 원인을 ‘하나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 “세상의 모든 목적은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향한다. 그 목적을 설정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이 역시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 논증들은 종교 안에서는 쓸모가 없고, 종교 밖에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 편집자주: 여기서 제베르크는 **‘하나님 존재 증명’**에 대한 전통적인 시도들(보편적 동의, 우주론적 증명, 목적론적 증명)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그는 이성적 논증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하며 논의의 방향을 전환합니다. -

2.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 ‘계시’의 중요성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모든 앎은 경험과 지각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살아있는 인격적인 존재는, 그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효과’를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드러내셔야(계시, Revelation)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느끼게 하셔야 합니다.
  2. 우리는 그 효과에 자신을 열어야 합니다. 시끄러운 장터에서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면 잠시 조용히 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듯,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우리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시는 특정한 교리나 교의의 집합이 아닙니다. 계시의 핵심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행위하신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합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님의 생각을 말로 설명하는 스승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를 직접 실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Word)’**인 동시에 하나님의 **‘행위(Act)’**이십니다. 그래서 초대 교부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입’이자 ‘하나님의 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역사를 통해서도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는가? 그것이 예수라는 한 인간을 통한 계시보다 더 위대하지 않은가?”

물론 자연과 역사도 하나님의 작품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거울에는 폭군 ‘몰록’의 모습도, 자비로운 ‘야훼’의 모습도 모두 비칩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는 기술적으로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께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데려가 주지는 못했습니다.

껍데기가 아닌 핵심, 즉 하나님의 선하고 은혜로운 의지, 우리 삶의 목표와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는 것보다 더 높고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3.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의도와 행위는 세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1. 자비와 사랑 (Love): 예수님은 끊임없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지치지 않는 선생님처럼, 자비로운 의사처럼 사람들을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기쁨과 인내와 목표를 주고자 하셨습니다.
  2. 거룩함 (Holiness):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비난을 두려워하지도, 칭찬을 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거룩함’이란 세상의 힘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내적인 고귀함을 의미합니다.
  3. 전능함 (Almightiness): 예수님의 거룩한 의지는 인간의 마음과 자연의 질서를 다스리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분은 시작한 일을 반드시 끝내시는, 인간 마음의 주인이자 세계 질서의 주인이셨습니다.

이 세 가지를 요약해 봅시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본질은 바로 **‘거룩하고 전능한 사랑의 의지(the holy and almighty will of love)’**입니다.

4. 예수님을 넘어,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발견했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본 예수님의 행위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일어난 한 ‘인간’의 행위였습니다. 그분도 피곤해하셨고,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이 인식을 그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틀에서 벗어나 생각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거룩하고 전능한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단지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지배하고 관통하는 절대적인 힘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힘이 바로 하나님이며, 세상의 주님이십니다.

  • 이 힘은 세상을 창조하고 존재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 이 힘은 세상의 사건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 이 힘은 인간에게 영을 주시고 영적 삶의 정점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초월해 계시기에(거룩함), 세상과 구별되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세상 안에서 일하시기에(전능한 사랑), 우리는 ‘하나님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분을 통해 살아 숨 쉽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세상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능하고 거룩한 의지는 동시에 사랑의 의지이기에, 인간에게 축복과 행복, 해방을 주고자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 바로 사랑이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영적 의지를 느끼며, 그 의지가 곧 나를 위한 축복과 구원의 힘임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두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하나님의 행위가 정말 사랑의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세상에는 고통이 가득한데?” “인간의 불신앙이라는 사실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함을 계속 주장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시간에 **‘자유로운 인간’**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