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새로운 삶의 시작, 그리고 흔들리는 영혼
1. 그래서, 내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무엇일까요? 아마 여러분 대부분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맴돌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독교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실제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는 기독교가 ‘절대적 종교’라고 말했고, 기독교가 가져오는 새로운 영혼의 상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논의를 우리 각자의 **‘영혼’**과 **‘실제 삶’**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결단 한 번으로 새로운 삶을 얻고, 그 능력 안에서 평생 행복하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위대하고 좋은 것을 힘든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듯이, 기독교적인 삶 역시 수많은 **‘투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고귀한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새로운 삶의 **‘시작’**과 그 이후에 겪게 되는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 새로운 삶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거듭남과 회심
우리 영혼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삶에도 시작점이 있죠. 무엇이 그 시작을 가능하게 할까요?
그것은 하늘이 쪼개지는 초자연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내신 그 말씀과 행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힘이 되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느끼고, 그 힘에 설득되고 정복당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영혼에는 새로운 내용, 즉 **‘믿음과 사랑’**이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심으로써,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거듭남(Regenera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영혼 자체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만약 영혼 자체가 변해버린다면,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영혼은 스스로 원하는 것만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새로운 내용(믿음과 사랑)이 우리 영혼에 완전히 채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고, 원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긍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능동적인 과정을 우리는 **‘회심(Con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결론적으로, 거듭남과 회심은 같은 과정을 다른 관점에서 부르는 말입니다.
- 거듭남: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 (수동적 관점)
- 회심: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에 응답하는 것 (능동적 관점)
- 편집자주: 거듭남과 회심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을 설명하는 핵심 용어입니다. 제베르크는 이 두 가지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측면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거듭남)와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회심)이 분리될 수 없이 얽혀 있다는 이 통찰은, 신학의 오랜 난제 중 하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합니다. -
3. 시작의 열정, 그리고 현실의 벽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삶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느끼고 그분의 나라를 원하는 영혼의 첫 움직임, 즉 믿음과 사랑이 싹트는 순간입니다.
이 첫 순간은 매우 강렬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변화가 클수록 감정은 더 큰 자극을 받습니다. 위대한 계획이 떠오르고, 만족감과 축복을 느끼며, 선하고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심장이 뜨겁게 박동하고, 세상은 작아 보이며,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묶어두는 관계는 무한히 복잡하고, 우리 마음은 너무나 변덕스럽습니다. 시작했던 열정은 금세 식어버리고, 일상의 과제들은 온 힘을 다해야 겨우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존재에 깊이 뿌리박힌 옛 습관들은, 하나님의 통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극과 목표를 향해 우리를 계속해서 끌어당깁니다.
이제 영혼은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현실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믿고 사랑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기회나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뜨거웠던 기억은 아름답지만, 차가운 현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마치 지도에 분명히 표시된 갈림길을 찾아왔는데, 지도에는 없는 새로운 갈림길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4. 흔들리는 영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목표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처음 느꼈던 그 인상이 너무나 강렬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찾는 자는 찾을 것입니다! 신앙과 사랑을 우리에게 가져다준 그 수단, 즉 **‘말씀’**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듣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과 교류하며, 우리의 이해와 감정을 깊게 해주는 책을 찾습니다.
이렇게 찾고 질문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영혼을 풍요롭게 합니다. 예전에는 ‘쓰레기’라고 경멸했던 오래된 찬송가, 비웃었던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경험이 이제 새롭게 이해되고 사랑스러워집니다. 모든 것에서 새로운 빛과 의미가 발견됩니다.
찾고 질문하는 영혼은 **‘발전’**을 경험합니다. 마음을 열수록 새로운 내용이 영혼 안으로 들어오고, 영혼 안에 새로운 내용이 들어올수록 마음은 더욱 활짝 열립니다. 기독교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기다려서는 안 되고, 찾아야 합니다.
기도: 찾는 영혼의 언어 믿음과 사랑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그것들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기대하고 찾고 질문하는 행위, 이것이 바로 **‘기도(Prayer)’**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은 주문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에서만,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가 받은 것을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음을 믿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믿음과 사랑을 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사도 바울의 경험처럼, 우리가 원했던 방식(고통의 제거)이 아닐지라도, 우리 영혼이 믿음과 사랑 안에서 더욱 강해지는(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방식으로 반드시 응답됩니다.
이처럼 기독교인의 내적 성장은 ‘찾는 것(기도)’과 ‘발견하는 것(응답)’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사람의 영혼은 믿음과 사랑으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성화(Sanctification, 거룩해져 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