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13강

제13강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1. 예수님의 사역: 두 가지 핵심 임무

여러분,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즉 그분의 신비로운 인격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셨죠. 오늘은 이 놀라운 분이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셨는지(사역, a work)**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질문은 예로부터 두 가지 큰 줄기로 답변되어 왔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로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요 14:9)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7)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류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셨습니다. 즉,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는 **‘계시자’**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선한 목자가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듯이,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속죄, Atonement)’ 목적을 가졌습니다. 즉, 우리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켜 주시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역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십니다. (계시)
  • 예수님은 우리로부터 하나님께 영향을 미치십니다. (속죄)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 언약(New Testament)’**을 맺으셨습니다. 옛 언약이 율법이라는 외적인 계명을 통해 주어졌다면,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을 내면적으로 변화시키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 편집자주: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는 두 가지 전통적인 모델이 바로 계시자(Revealer)로서의 그리스도구원자/속죄자(Redeemer)로서의 그리스도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전자를, 어떤 신학자들은 후자를 더 강조해 왔습니다. 제베르크는 이 두 가지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역 안에서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

2.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자, 이런 신학적인 설명들을 잠시 내려놓고,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무엇을 경험합니까?

처음 우리 영혼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의 위대한 사상, 좋은 가르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사로잡지는 못합니다.

그때, 한 역사적 인물(예수)이 우리 영혼 앞에 나타납니다. 그분에게서 삶의 힘, 강하고 전능한 의지, 거룩한 사랑의 힘이 우리에게 밀려옵니다. 그 의지가 우리를 사로잡고 복종시킵니다. 그분이 우리를 원하셨기에, 우리도 그분을 원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권위, 즉 **‘주님(Lord)’**이 되십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의 첫 번째 측면입니다. 삶의 모든 모습과 권세 중에서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진정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3. 주님은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는가?

주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할 때, 우리는 세상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 존재의 정점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차갑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배우고, 세상의 근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을 통해 보호받고 있으며, 마침내 정의가 승리할 것임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죽음을 넘어 승리하는 삶을 배우고, 그분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이 모든 경험은 결국 하나의 위대한 진리로 모아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죄와 죄책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이제 이웃과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라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말씀을 기쁨으로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행사하여 우리를 믿음과 사랑으로 이끄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의 정점으로 이끄시고,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4. 십자가의 역설: 어떻게 죄인이 용서받는가?

이제 우리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죄인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면 섬길수록, 우리 안의 죄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죄를 더욱 날카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가, 동시에 그 죄를 용서하고 우리에게 평화를 줄 수 있을까요?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역설이 있습니다. 죄인이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 죄인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하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죄 용서와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기독교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 문제를 설명해 왔습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 죄 없으신 한 인간이 서 있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유혹과 고통, 심지어 하나님께 버림받는 감정의 쓰라림까지 극한으로 경험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끝까지 하나님께 충실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셨습니다. 세상은 그에게 자신의 악함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그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 있었던,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철학이나 국가가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이 역사의 진로를 결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인간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의 길로 이끄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분을 통해 **새로운 인간성(humanity)**이 실현될 것이라는 사실이 보장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은 우리 안의 죄의 권세를 깨뜨립니다. (주님으로서의 사역)
  • 십자가에서 증명된 그의 거룩한 인간성은 우리 안의 죄책감을 극복하게 합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

5. 십자가는 어떻게 우리의 죄를 씻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를 ‘대표’하고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에 내적인 영적 연결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바로 ‘신앙’ 안에서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사역을 하도록 정하셨고, 그가 마신 고난의 잔은 아버지가 주신 것이기에, 그의 고난은 하나님께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해 그가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 죄를 속죄했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되어야 할 바로 그 모습이며, 우리는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그 모습이 될 수 있는 **‘우리의 대리자’**입니다.

모든 위대하고 선한 삶에는 이런 대리적이고 속죄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선한 경향은 주변 사람들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만약 그가 그 선함 때문에 고통받는다면, 증명된 선의 승리는 마치 보호막처럼 그를 박해한 자들의 죄를 덮어줍니다.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통을 자신의 의로움으로 받아들이심으로써, 그분은 선(善)의 힘을 증명하셨고, 고통받고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그래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그분이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하고 싶어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십자가는 악과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선의 능력의 표징이며, 인간의 죄에 대한 속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