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구체적인 역사로 나타난 종교, 기독교
1. 추상적인 관념에서 역사적인 인물로
여러분,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기독교를 하나님의 통치, 믿음, 사랑과 같은 다소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개념들을 통해 이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인물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위대한 개념들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빼놓고 기독교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실증적(positive)’, 즉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실체입니다. 종교는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라, 언젠가 어딘가에서 인간이 처음으로 경험한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종교는 시작점이 있고, 역사를 통해 발전해 왔으며, 특정한 교리와 제도를 가진 ‘교회’라는 공동체로 존재합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를 자신의 삶으로 구현해 낸 최초의 역사적 인물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바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경험을 온전히 이루어낸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그 위대한 경험을 인류의 역사 속으로 가져오신 분입니다. 이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주님(Lord)’이라는 칭호를 아무런 제한 없이 받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깨우고, 삶의 내용을 채워주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인격이 우리에게 놀랍고도 신적인 특징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잡한 ‘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을 불러일으킨다는 ‘신앙의 경험’ 그 자체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 6:68)
2. 예수님의 기적,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기적’의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행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적입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은 기적을 통해 위대해졌지만, 예수님은 너무나 위대해서 개별적인 기적들이 오히려 작아 보일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 기적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따지며 논쟁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기적의 문제를 순수한 자연 관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면, 우리는 결국 “기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미지근한 결론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는 것을 ‘큰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리스도께서 **‘영혼에 일으키시는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더 큰 기적이라고 말입니다. 영혼은 육체보다 더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영적 기적은 지금도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믿음을 낳고, 축복과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기적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기적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만이 기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적을 판단하려면, 자연과학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삶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자연의 법칙조차 더는 믿음의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기적 뒤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작용했음을 분명히 느끼기 때문입니다.
- 편집자주: 제베크르는 여기서 기적에 대한 합리주의적 비판을 넘어섭니다. 그에게 기적의 핵심은 자연법칙의 파괴 여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인간 영혼을 변화시키는 사건’에 있습니다. 영혼의 변화라는 가장 큰 기적을 체험한 사람에게, 물리적인 기적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적을 신앙의 출발점이 아니라, 신앙의 결과로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
3. 말씀과 전통: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는가?
우리는 예수가 기독교의 시작이자 창시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오늘날 우리 영혼에 직접 말씀하시더라도, 그것은 2000년 전 그분이 하셨던 역사적 계시와 다른 새로운 내용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현존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의지가 그분의 역사적 말씀 속에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한 역사적 기록, 즉 복음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단순히 ‘예수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그분이 어떻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지배를 드러내셨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바울은 역사적 예수가 이제 만물을 다스리는 영적인 ‘주님’이 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 요한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 바로 예수라는 인격 안에서 육신이 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들의 관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그분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며, 그분은 인류의 주님으로 계속 살아 계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은 제자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이 선포하는 핵심 사상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구약성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셨다는 사실보다 더 큰 칭찬은 없을 것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을 위한 위대한 교육자 역할을 했습니다.
4. 교회의 탄생: 말씀과 전통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신약과 구약은 기독교의 **거룩한 경전(정경, Canon)**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진정한 기독교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최초의 증인들, 즉 사도들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2세기 교회는 ‘영지주의’나 ‘몬타누스주의’ 같은 이단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영적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교회를 혼란시켰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기록된 말씀”**과 **“사도적 전통”**으로 대항했습니다. 이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엄청나게 중요하고 축복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도 따랐습니다. 성경을 단순히 영감받은 개인들의 기록이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가 신성한 법 조항인 것처럼 여기는 **‘율법주의’**에 빠질 위험이었습니다. 기록된 말씀과 전통을 강조하다 보니, 개인의 살아있는 종교적 경험이 무시될 위험도 생겼습니다. 모든 성서 종교는 종교성을 질식시키는 율법 종교가 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르틴 루터가 우리를 오류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루터는 성경의 권위가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에만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성경의 우주론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종교’에 대해 말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루터는 동시에, 주관적인 믿음, 즉 ‘영’의 권리를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험’할 때, 비로소 성경은 우리에게 참된 권위가 됩니다.
물론, 성경의 역사적 사실들(예: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 기적들)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모두 다룰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기독교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단지 신학자들의 비판적인 ‘결과’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가는 열린 문,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그분의 초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배와 믿음, 하나님의 나라와 사랑이라는 개념을 사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받은 실증적인 종교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통치를 행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상에 묶으시며, 우리 영혼 안에 믿음과 사랑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