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기독교는 어떻게 ‘절대적 종교’임을 증명하는가?
1. 증거를 보여주세요!
여러분, 지난 시간에 우리는 기독교가 “나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종교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주장을 증명하는, 조금은 어려운 여정을 떠나보려 합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죽기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류의 정신문화가 아무리 발전하고 과학이 세상을 파헤쳐도, 기독교가 가진 고귀함과 윤리적 수준을 결코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의 이런 고백은 큰 울림을 주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감동이나 체험만으로는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요 7:17)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증거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마치 색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빨간색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잠시 **‘휴전’**을 제안합니다. 일단 세상의 모든 종교가 나름의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기독교 역시 그 종교들 중 하나로서, 공정한 비교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모든 종교적 사상 체계를 평가할 수 있는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그 종교는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 논리의 기준: 그 가르침에 모순이 없고, 이성적으로 일관성이 있는가?
- 역사의 기준: 수많은 비판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는가?
- 영혼의 기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필요(기억나시죠? ‘의존에 대한 갈망’과 ‘궁극적 목표에 대한 열망’)를 완벽하게 채워주는가?
자, 이 세 가지 기준으로 여러 종교를 살펴보겠습니다.
2. 다른 종교들은 이 테스트를 통과할까?
인류의 오래된 종교들을 한번 살펴봅시다. 안타깝게도 이 종교들은 첫 번째 기준인 ‘논리의 기준’에서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 모순으로 가득 찬 신들: 신들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헌신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 신들 위에는 ‘운명’이라는 더 높은 힘이 존재합니다. 결국 신들조차 영원하지 않고 ‘신들의 황혼’을 맞이합니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신을 섬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이해할 수 없는 요구: 신들은 인간에게 이성적인 질서를 따르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신들 자신은 질투하고 싸우는 등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 낙관 속의 비관: 종교는 축복과 희망을 약속하지만, 그 신자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에 대한 비관주의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결국 이런 내적 모순은 ‘역사의 기준’에서도 약점으로 드러납니다. 이런 종교들은 특정 문화권 안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이성적인 비판이 시작되면 힘을 잃고 쇠퇴합니다. 마치 나이가 들어 스스로 늙어 죽는 것처럼 말이죠. 비판과 불신앙이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가진 모순 때문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3. 기독교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떨까요? 기독교 역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비판과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결코 늙어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마다 개혁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마치 불사조처럼 재 속에서 더욱 강하게 살아났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밭은 열매를 맺었고, 불신앙의 장작더미 위에서 복된 영혼처럼 솟아올랐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바로 기독교가 앞서 말한 세 가지 기준을 모두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기독교는 논리적으로 일관됩니다. 다른 종교들이 가졌던 모순들이 기독교 안에서는 놀랍게도 해결됩니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은 전능하시면서 동시에 사랑이십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진리 안에서, 영혼과 삶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둘째, 기독교는 인간 영혼의 필요를 완벽하게 채워줍니다.
- ‘의존의 갈망’에 대한 응답: 우리는 더 이상 눈먼 자연법칙이나 변덕스러운 신들에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이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권위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영적인 힘입니다.
- ‘목표의 열망’에 대한 응답: 우리는 더 이상 작고 세속적인 성공에 목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장 위대하고 영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 목표는 우리 영혼에 잠재된 모든 힘을 이끌어내어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게 합니다.
- 편집자주: 여기서 말하는 ‘권위(Authority)’는 부정적인 의미의 ‘권위주의’와 다릅니다. 제베르크는 우리를 억압하고 짓누르는 외부의 힘(죽은 문자, 율법)이 아니라,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내고 생명을 주는 내적인 힘(살아있는 인격, 영)을 참된 권위로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바로 후자의 권위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
이처럼 기독교는 전 인류를 위한 종교이며, **‘절대적 종교’**이자 **‘이성적인 종교’**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가 막연히 꿈꾸고 약속했던 것들이 기독교 안에서 비로소 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모든 종교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모든 종교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4. 남겨진 마지막 질문 하나
자, 여기까지 제 설명을 들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불안한 질문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독교가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우리 마음의 소원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종교라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건 아닐까요? 마치 동화나 판타지 소설처럼,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려낸 하나의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면 어떻게 하죠?”
정말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