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1강

제1강 종교는 어디에서 왔고, 그 본질은 무엇일까?

1. 오늘날 우리가 종교에 대해 무지한 이유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될 제 강의는 보통의 대학 강의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신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을 위해 마련한 신학 강의이기 때문이죠. 사실 이 강의는 10년 전부터 오랫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온 것인데, 마침내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실현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부디 이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고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오늘날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다른 생각을 반박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특정인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인에게 흥미로운 주제이며,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다른 것을 비판하며 방어벽을 쌓을 필요가 없겠죠.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에게 방어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신앙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무지(無知)’**에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으니 더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비판할 때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비판하고, 감탄할 때도 깊이 없이 감탄합니다. 모든 것이 힘이 없고 생기가 없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먼저 ‘앎’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 앎이 영혼을 깨우고 정신을 북돋는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 종교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여러 가지 추측들

기독교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종교’ 그 자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종교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탐구해 봅시다.

사실 인류의 가장 고귀한 가치들이 늘 그렇듯, 종교의 시작 역시 깊은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 법, 그리고 종교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과거 계몽주의 시대에는 종교의 기원이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신’, ‘자유’, ‘영혼 불멸’ 같은 중요한 개념들이 원래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내장되어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마치 컴퓨터에 기본 프로그램이 깔려 있듯이 말이죠. 이것을 **‘자연 종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와 문화마다 종교의 모습이 너무나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 종교’라는 것이 학자들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동화(童話)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압니다.

- 편집자주: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17~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사상으로, 인간의 ‘이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종교 역시 복잡한 교리나 계시가 아닌, 모든 인간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 종교’ 사상입니다. 제베르크는 이러한 생각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비판하며 논의를 시작합니다. -

또 다른 주장은 이렇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무한함’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스스로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기 바깥에 있는 어떤 ‘무한한 존재’를 상상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빛나는 것, 예를 들어 태양이나 하늘 같은 것에 ‘무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신’이라고 불렀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무한’은 논리적인 개념일 뿐, 살아있는 인격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추상적인 ‘무-한-함’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인격적인 ‘신’이 될 수 있을까요?

최근에는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설명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하기에, 종교 역시 가장 원시적인 형태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애니미즘(Animism)’ 또는 **‘페티시즘(Fetishism)’**이라고 부릅니다. 옛날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애니미즘) 그리고 그 영혼들이 어떤 특정한 물건(예: 돌, 나무)에 깃들어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했죠. (페티시즘)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영혼들에게 잘 보이려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런 믿음이 발전해서 수많은 ‘신’을 섬기는 다신교가 되었고, 마침내 이 모든 힘이 하나의 통일된 힘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가 탄생했으며, 그 최종 진화 단계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나요? 하지만 이 또한 수많은 허점을 가진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역사 속에서 종교는 진화만 한 것이 아니라 퇴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원시적인 신앙 형태를 가진 민족들에게서 오히려 ‘전능한 신’에 대한 놀랍도록 고차원적인 믿음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진화론적 설명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3. 종교, 그 본질을 찾아서

결국 ‘신’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인간에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입니다. 세상을 관찰하고 탐구한다고 해서 ‘신’이라는 개념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신’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전제 조건’처럼 늘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 그것을 인류는 두려움과 기쁨으로 느껴왔습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이것을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계시(Revelation)**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께서 자신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에게 다가오신 것이죠.

하지만 신께서 다가오셨다 해도, 인간의 마음속에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괴테는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통하는 것만 이해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종교성’이 없다면, 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종교를 교리, 제도, 의식의 집합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살아있는 힘으로, 영혼의 내용으로 경험할 때만 종교는 살아 숨 쉽니다. 주관적인 **‘종교성’**이 사라지는 순간, 객관적인 ‘종교’는 죽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이 ‘종교성’은 우리 본성의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요?

인간은 세상 속에서 두 가지의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느낍니다. 첫째, 우리는 세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하나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둘째, 우리는 세상에 맞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세상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힘을 이용해 문명을 건설하고,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우리는 위대하면서도 동시에 연약한 존재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성이 싹틉니다. 자신보다 한없이 거대한 세상에 의존하고 있음을 느끼는 영혼은, 동시에 자신보다 한없이 높은 존재에게 의존하고 싶은 갈망을 느낍니다. 또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길을 개척하려는 영혼은, 모든 것을 넘어선 궁극적이고 영원한 목표를 향하고 싶은 열망을 느낍니다.

이때, 어떤 강력한 힘이 우리 영혼에 개입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목표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 힘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만족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는 항상 우리에게 선물인 동시에 과제입니다. 신의 힘을 느끼는 것(선물)과 그 힘에 순종하는 것(과제)은 모든 종교의 공통점입니다. 이 힘과 과제가 자연적인 것(풍요, 승리)에 머무르면 자연 종교, 도덕적인 법칙에 집중하면 윤리 종교, 그리고 영혼을 세상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목표로 나아가게 하면 구원 종교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종교의 본질은 우리 정신의 본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종교를 갈망하고, 우리의 본성은 종교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종교성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성이야말로 종교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자 생명이기 때문입니다.